Serapeum의/생각

부유한 국가 속의 가난한 개인

serapeum 2010. 12. 21. 02:26

 

최근 이마트의 ”피자”와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으로 더 크게 이슈가 된 자영업자들의 생존문제를 보면서 과거(2004년)에 썼던 글을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글의 대상은 개인임을 밝힙니다. 경제의 다른 주체들인 취업한 개인들, 기업, 정부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의 배경이된 시대상황은 2004년 하반기 입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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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의 붕괴


재래시장은 썰렁하고 이곳저곳 골목마다 음식점들은 주인장만 외로이 창밖을 응시하는 사진들이 심심치 않게 신문의 지면을 채운다. 언론에서 요즘(2004년) 들어 부쩍 많이 이야기하는 "내수경기의 불황"을 상징하는 사진들이다. 여기저기서 죽겠다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나오고, 정말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의 숫자도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명퇴로 밀려나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무작정 하면 되겠지 하며 시작한 장사가 망해서 길거리로 나온 중년의 가장도 서울역에 늘어만 가고..... 정말 우리나라는 일본의 13년 장기불황과 비슷한 장기불황의 골짜기로 떨어지는 것인가라는 걱정의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수출이 그나마 잘 된다고는 하는데, 석유값은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고 테러소식이 매일매일 날아오고... 수출도 막다른 길로 접어들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들로 온통 나라가 시름에 잠겨있는 듯하다.


그리고는... 모두들... 주말이면 대형할인점으로 물건들을 사러간다. 물론 차를 몰고 나간다. 보통 10만원 어치는 기본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구입한 생필품들을 들고서 버스나 지하철을 탈수는 없다. 그리고 외식도 좀해야지... 소갈비전문점 "**가든"에 갔더니 30분은 기다리란다. 보통 3층 이상 건물로 좌석수가 수백은 되는데 30분을 기다리라니.... 다음에는 예약하고 와야겠다고 자신의부족한 준비성을 반성해 본다.


그래서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곳에 가니 여기도 좀 기다리란다.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 역시 대기시간이 필수... 다음 주말에는 서울 외곽으로 나가야지라고 다짐하며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뻬이비-빽-립"으로 가족들과 좀 지루하고 피곤한 저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는 9시 뉴스를 보면서 다시 나랏일 걱정에 근심을 한다. 너무 살기가 안 좋아......


소비행동의 변화


위의 상황이 우리나라 중산층들의 2004년, 현재 모습이다. 사실 주위를 돌아보면 경기불황의 우려는 약간 과장됨을 보이지만 실상과 과장의 차이는 빠르게 매워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수경기의 침체가 단지 부동산 가격하락과 신용카드 문제로 시작된 개인들의 부채증가와 신용불량의 문제와 같은 일회성 원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문제가 소비위축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보다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만든 주된 이유는 소비자들의 소비행동 변화에 있다. 웰빙 열풍으로 이전에는 그럭저럭 만족하며 이용하던 동네 음식점들을 이제는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이왕 소비할거 한 번에 폼 나게 쓰자로 바뀌고, 동네 슈퍼에서 사느니 대형할인점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소비의 패턴이 바뀐 것이 내수위축의 히스테리를 일으킨 주범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내수경기 위축은 거래가 힘들어지고 재산세율이 올라서 열 받은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들의 생각과는 다른 곳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재래시장을 예전만큼 이용하는가? 그리고 집 주위의 소규모 음식점들에서 외식은 언제 해봤는가?


지금의 내수경기불황을 과도한 가격상승을 막는 현 정부의부동산 정책 때문으로 돌리는 그들의 주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을 보지 못해서 생기는 일종의 착시인 것이다. 정작 힘든 구시장의 자영업자들조차 그들의 소비 형태는 과거와는 많이 다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소비처가 바뀐 것은 무시하고 일반 대중이 자신들에게 소비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과거 고등학생시절을 돌아보면 친구들과 외식을 한다고 하면 가까운 분식집에 가는 것이 전부였고, 대학생이 되고난 이후에는 포장마차나 대학가의 허름한 선술집이나 동네카페에 가서 술 또는 차나 한 잔 마시는 것 이였다.


당시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전문점, 별다방, 콩다방들이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웰빙에 민감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청소년들은 어떤가? 만남의 장소는 당연히 유명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다. 연인들이 테이트 장소로 이용하는 곳은 동네 카페가 아닌 중심가에 있는 "별다방, 콩다방"다.


그리고 기념일이나 가족들의 외식나들이 장소는 동네의 고기집이 아니라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그리고 음식의 영양과 위생 상태에 민감해지면서 재료를 직접 사다가 집에서 조리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 이 모든 것들이 자영업자들이 거리로 나와 장사가 안 된다고 데모(2004년, 솥단지 시위)를 하게 된 이유인 것이다.


그럼 이런 개인들의 소비패턴 변화로 발생한 문제를 국가가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국민 개개인의 취향이 변한 것을 어떻게 할까? 때문에 일전에 있었던 음식업 협회의 데모는 한마디로 코미디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기사 중에 속옷가계를 운영하는 아줌마의 애절한 사연이 있었다. 장사가 너무 안 되서 전기고 전화고 가스고 모두 끊기게 되었고, 돈이 없어서 가계 월세를 못내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물건을 사오지도 못해서 가계가 꼭 폐업 정리하는 모양이라는 것이었다. 그럼 사람들이 정말 속옷도 안 입고 살고 있을까? 물론 독특한 취향 때문에 속옷을 안 입는 경우는 있겠지만, 대부분 속옷을 안 입지는 않는다.


그럼 왜 재래시장의 속옷가계는 장사가 안 될까? 그 이유는 구입 장소의 변화 때문이다. 속옷과 같은 것들을 재래시장에서 구입하던 계층의 소비자들이 그들의 구입처를 할인점과 홈쇼핑으로 바꾼 것이다.


용산전자상가의 컴퓨터 상점들의 불황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의 등장과 연관이 있다. 과거에 컴퓨터 한대를 조립해서 판매를 하면 보통20만원에서 30만원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한 마진을 남겨도 장사는 잘되었다.


왜? 대기업제품은 더 비쌌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격비교 사이트의 등장과 더불어 가격정보의 독점이 사라지면서 컴퓨터 한대 팔아서 5만원 남기기는 것도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장의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다보니 자영업자들의 주머니가 점점 얇아지게 되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어렵다고 하게 되고 결국에는 정말 어려운 상황을 부르는 쪽으로 시류가 흐르고만 것이다. 단순한 경기의 순환에 의한 것이 아닌 전체적인 소비행동의 변화가 지금의 불황을 몰고 온 직접적인 이유이다.


그럼 이런 시장의 변화가 왜 발생 했을까? 그것은 우리사회가 그만큼 선진화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인데, 선진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생활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불황은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서는 쉽게 해결될 수없는 성격의 불황이다.


그럼 선진화가 왜 내수불황을 몰고 왔을까?


선진국의 중산층


1996년, 영어를 배우겠다고 취업이 된 회사를 포기하고 비행기에 올라 영국 캠브리지로 도망간 적이 있었다. (물론, 어학연수는 핑계였고, 유럽 전체를 돌아다니다 왔었다.) 그곳에 있을 때 충격 이였던 것들 중 하나는 영국이라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개개인의 삶은 참 곤궁하구나!' 이었다.


여기가 진정 세계를 호령하던 태양이 지지 않는다던 대영제국이라는 곳인가? 길에는 담배를 구걸하는 걸인들과 노숙자가 보이고 지저분한 거리와 해만지면 설렁해지고 인적이 드문 주택가, 한국에서는 흔한 주택가 음식점과 슈퍼마켓도 찾아보기 힘든 도시를 보면서, 당시에는 단순히 영국은 이렇구나 했었다.


그런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스페인, 룩셈부르크,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의 서구 선진국들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잘 산다는 나라들의 삭막함 이였다. 초저녁만 되면 썰렁해지는 거리를 돌아다니다보면,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사는지 궁금했다.


그나마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은 시티센터와 그곳의 공공도서관과 대형쇼핑몰 이였다. 그리고 시 외곽에 자리한 멀티플렉스 워너브라더스 계열의 극장과 함께 있는 쇼핑몰 등이었다.


오히려 남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동구권의 나라들이 오히려 내게는 더 편했다. 해가 져도 왁자지껄한 도시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점들과 노점들 등등 당시의 유럽은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보다 후진국을 돌아다니는 것이 오히려 친근했었다.


과거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귀가 따갑게 듣던 단어 중에 아직도 듣고 있는 것이 선진국 진입이다.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든 우리나라의 온 국민은 몇 십 년 동안 선진국을 꿈꾸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선진조국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이였다.


그러나 직접 선진국을 체험하면서 도대체 우리가 원하는 풍요로운 선진국이 서구 유럽의 이런 건조하고 팍팍한 모습인가라는 혼란을 느꼈었다. 어학연수를 이유로 갔지만 그들의 생활에 더 관심이 갖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더 두드러지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진국의 국민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같이 풍족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부지런히 일을 해야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생활수준이었다. 캠브리지의 일반 가정들은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도 외국인 어학연수생들의 민박을 통해서 부수입을 얻는 것을 아주 중요한 수입원으로 여겼을 정도로 생활에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 이었다.


분명한 것은, 그전에 본 영화나 TV로 보는 선진국의 모습은 그들의 상류층에 국한된 것들이었기 때문에 내게 그 나라의 평범한 중산층들의 생활에 대한 왜곡된 선입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삶은 오히려 우리의 삶보다 무미건조한 것이었고, 극도의 검소함 그 자체였다. 일을 마치고 퇴근 후에 가족들과 모두 모여 저녁식사 하는 것과 축구중계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 사람들이였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행동은 여유롭고 대화는 유머가 넘쳤다.


그것은 내가 그 때까지 배워온 선진국이 아니었다. 박통시절부터 선진국은 유토피아의 다른 표현이라고 세뇌당해 온 우물안개구리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었다. 왜 이럴까? 당시의 궁금증은 특별한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부유한 국가 속의 가난한 개인"이라는 선진경제체제의 진짜 모습을 보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부의 흐름


경제원론 시간에 국가 간의 자유로운 교역을 통해서 세계경제의 부가가치는 증대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들이 경제공동체를 구성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등의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근거한다.


그리고 한 나라의 내부 경제를 봤을 때도 자유로운 시장경쟁체제를 갖춘 나라가 그러지 못한 나라에 비해서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유경제체제가 그 어떤 경제체제보다도 효율적이고 월등한 부가가치를 생산한다는 주장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의 반열에 올라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어떤 크기로든(개인이든 국가든) 그 규모에 상관없이 패권을 쥔 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선일 뿐이다. 사실은 국가 간이나 일국의 거시경제에 있어서만 부분적으로만 옮은 이야기이다. 개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나마도 남을 것이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개인들의 주머니 사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이것이 숨겨진 진실이다.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개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이해하는 개인들에게만 유리한 것이 지금의 자유시장경제체제이고 또한 그들에게만 부가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지금의 자유시장경제체제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들은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뭔가 엄청나게 큰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나타내는 것 같은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개인들에게는 지속적으로 실망스러운 결과만을 돌려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실패 사례가 더 많다. 단지 숨겨졌을 뿐이다.)


어느 순간, 그 차이를 인정했던 자신들의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의 진짜 모습을 인식하게 되면서 개인들은 당황하고 우왕좌왕하게 되었다. 세계화를 반겨야할지? 반대해야할지? 우파를 지지할지? 좌파를 지지할지? 종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스트레스만 가득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다. 눈치 빠른 몇몇은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공을 이루었다. 그들에게 있어 성공의 열쇠는 “진정한 부가가치는 모든 정보가 개방된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보의 독점”말이다.


돈은 정보가 원활하게 흐르지 않는 곳으로 모이게 된다.


모든 경제적인 활동에 있어서 생산자, 도매업자, 소매업자를 거치는 유통경로 속에 일반 소비자들이 모르는 과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재화의 유통 마진은 크게 된다.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해도 아파트의 분양가가 턱도 없이 올라가는 이유도 이 경우다.


과거 정치권에서 대통령들이 수조 원,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챙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대가 정보를 통제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보가 모두에게 공개 되어버린다. 때문에 요즘 정치권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2004년의 노무현 행정부는 IMF이전의 과거와 같이 그들의 불법정치자금 수수를 눈감아주고, 국민들이 알지 못하게 막아주는 정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버리는 바람에 비자금이 잘 모이지 않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정보의 차단과 더불어 정보의 왜곡까지도 이용하게 되면, 그 효과는 실로 엄청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경우로 다단계 업체들과 종교들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곳에서는 의심을 하면 안 된다는 내부규약을 강조하고 사실을 왜곡하여 돈을 모으고 있다고 보면 된다. 상상할 수 없는 폭리를 챙길 수 있고, 전혀 재화를 공급하지 않고도 돈을 모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정보통제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다.


당사자들이 인지를 했든 못했든 간에,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부의 축적을 경험한 개인들은 정보개방이 국가규모에서는 성공적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부의 창출은 정보접근의 불평등 아래에서 더 수월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정보독점의 효과는 나만이 알고 다른 이는 모르는 상황이 지속될 때, 그 크기를 극대화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여기서 시장경제가 강조하는 효율성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개인의 탐욕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런 이유로 몇몇 패권국가와 기업들을 중심으로 세계화가 강력하게 주장되는 것이다. 세계화는 몇몇 패권국가와 기업들만이 전 세계의 정보를 독점하는 전 지구적 정치경제시스템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개방된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쪽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절대로 자신의 정보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약자가 자신의 정보공개를 거부하면 바로 돌아오는 것은 강자의 주먹이다. 이것이 세계화의 참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정보접근의 불평등을 이용한 부의 창출은 초기 산업자본의 축적과정에서 아주 효과적 이였다. 실제로 그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 부족한 초기 산업자본을 축적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강남개발, 증시조작 등 수 많은 정치자금 조달을 위한 정권차원의 경제공작들이 정보조작과 정보독점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과도한 부의 집중을 만들어냈다.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역설


그런 과도한 정보의 비대칭과 부의 집중은 역설적이게도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전체의 발전을 추구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를 항상 공황이라는 참극으로 참여자들을 인도한다.


우리나라 역시 경제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올라선 후에도 예전 방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사회를 붕괴 일보직전까지 몰고 갔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부의 축적 방식에만 익숙했던 우리나라는 금융시장 개방과 동시에 IMF를 만났던 것이다.


정보조작과 독점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아담스미스가 이야기한 이기적 욕구가 공동의 이익으로 돌아오는 경제활동의 자연스러운 과정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개인 이익의 크기가 전체의 생존을 좌지우지할만한 정도로  커진 상태에서는 개인의  이기적 욕구는 전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탐욕으로 변질될 뿐이다.


인구가 1000명인 공동체에서 개인의 이익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00분의 1인 경우와 10분의 1인 경우는 분명히 다른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전자에 있어서 그 개인의 탐욕은 전체를 살찌우지만, 후자의 탐욕은 전체를 죽이게 된다.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단계에 이른 나라는 도덕적인 건강한 나라의 유지를 위해서라는 구호가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정보의 비대칭을 이용한 부의 축적을 단속을 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투기억제 정책은 그대표적인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개인들은 부의 축적이 투명한 사회에서 보단 불투명한 사회에서 더 손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현 정부(노무현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가는 우리나라에서 살아가야 할 개인이라면 이제는 투명한 사회를 받아들여야 한다. 또 다른 국가부도사태를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개인들만 투명한 사회


선진화된 사회에서 개인들에게 대박이란 없다. 단지 하루하루의 생활이 있을 뿐이다. 왤까? 앞에서 말했듯 대박이란 정보의 독점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독점은 기회의 독점을 만든다. 기회의 독점은 다른 경쟁자들을 배재하고 자신이 그 기회를 독식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라는 것은 사회가 점점 민주화 되고, 선진화가 되면 될수록 독점하기 힘들게 된다. 정보의 자유화가 점점 진행되면 될수록 개인들의 대박 확률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그럼 이제 개인들에게 남은 유일한 대박은 무엇일까? 그것은 2002년 말부터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로또(Lotto)다. 1996년 당시 영국의 시티센터의 할인점에 가보면 입구 근처 로또 가판대에서는 항상 로또를 구입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그들은 우리의 로또 열풍과 유사할 정도로 모두들 일주일 동안 로또 당첨번호 추첨방송을 기다리며 즐거워했었다. 투명한 사회에서는 더 이상 대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재래시장의 붕괴의 원인은 무엇일까? 답은 할인점이다. 지금까지 그나마 버티고 있는 재래시장은 그 주위에 아직 대형할인점이 생기지 않은 경우다. 당장 할인점에 가봐라 없는 것이 있나? 위생 상태는? 가격은? 친절함은? 무엇하나 비교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그런 할인점의 강점들이 너무 빨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버린 것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재래시장들의 불황은 대형 할인점들의 등장과 그 괴를 같이 한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운동 이 후 대폭 상승된 노동자들의 임금을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시작된 자동차의 대중적인 보급과 맞물려 재래시장들은 그 붕괴속도는 더 빨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형마트들이 한 지역에 두세 개씩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재래시장과 관련된 중간상들과 동네의 작은 소매점들 역시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럼 컴퓨터를 파는 전자상가들의 불황원인은 무엇일까? 인터넷을 이용한 가격비교 사이트들 때문이다. 다나와 등의 가격비교 사이트의 등장으로 적정마진이라는 것이 사라진 것이다. 정보의 독점으로 유지되던 이윤이 소멸한 것이다. 과거에는 컴퓨터 조립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등학생도 조립이 가능할 정도의 프라모델 조립 수준이 되어버렸다.


음식점들의 경우는 왜 장사들이 안 된다고 난리일까? 그것은 다국적 외식체인들과 텔레비전의 맛비교 프로들 때문이다. 일주일이면 각 방송사마다 전국의 맛집들을 소개하느라고 정신들이 없다. 그리고 고급스러움을 무기로 내세우는 유명 외식체인업체들의 광범위한 확장은 개인들의 입맛을 바꿔 놨다.


거기다가 음식점을 차리는 것이 너무나 쉬워졌다. 프랜차이즈나 창업정보를 이용하여 너도나도 쉽게 창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음식점들의 수는 적정수치를 초과해버렸다. 음식점 창업정보가 너무 광범위하게 개방된 후유증이 그들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동네의 소규모 음식점들은 하나둘씩 폐업의 선택을 강요받게 되었다.


실제로 앞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선진국은 경제활동인구 중 자영업자 비율이 10%대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2004년) 무려 37%이상이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비율의 의미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그동안 기다려온 선진국의 모습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큰 흐름은 실제하며, 그 흐름을 개인들이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사회가 점점 민주화되고 선진화되어 가면, 어쩔 수 없이 사회는 더 개방적이 될 수밖에 없고, 개인 수준의 정보 독점은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개인이 부를 축적하는 것은 힘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개개인들에게는 더욱 충격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 간의 정보개방 상황이 국가 전체와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그들에게 이것은 전례 없는 정보독점의 기회가 된 것이다. 선진화된 사회에서 정보는 이제 온전히 그들의 것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윤 역시 그들에게 집중된다.  


두 가지의 선택


선진화된 나라의 개인들의 모습이 이런 것이라면, 너무 비관적이지 않은가하는 실망감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모습은 많이 달라진다. 그럼 개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들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폐쇄와 개방의 두 가지의 선택이 존재한다. 한가지의 선택은 뒤로 되돌리는 것이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정보공개를 막고, 옛날로 돌아가서 TV, 인터넷 등의 이용을 모두 끊고 각자 개인들이 속한 작은 공동체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선진화되고 개방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런 현상들을 모두 인정하고, 그 대신 그 결과로 발생하는 특정 집단의 독점적 이윤을 전체적으로 나누어 사회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나라


현재(2004년 당시) 내수경기불황의 원인은 위와 같은 흐름으로부터 나타난 큰 변화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을 무능한 지도자로 매도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시장 상황은 개인들의 입장에서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악화될 것이다.

 

투명성을 강조하는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에 목매는 사람들의 정부로 교체되기는 학수고대하는 부동산 투기와 같이 다른 이의 희생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하려는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들이 대안 세력으로 믿는 것은 한나라당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사회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그저 이권에 개입해서 검은 돈을 챙기는 것뿐이다. 그리고 우리사회 모두가 나누어야할  빵덩어리를 탐욕스럽게 챙기는, (그들과 결탁된) 불건전한 자들을 (그들이 흘린 몇 조각 빵부스러기에도 감격해하는 우민화된 지지자들에게) 자애로운 강자로 각색하는 것뿐이다. 


때문에 적응하기 힘든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 있는 다수의 개개인들에게 한나라당의 집권이 새로운 대안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한나라당의 집권은 상황의 악화를 가지고 올 것이다.


남미의 경우, 그들이 선진국 문턱에서 왜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몰락해버렸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50여 년 전 남미의 여러 나라들은 그들의 경제와 사회가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하던 시점에 반대의 길을 택했었다. 국가발전을 위한 한 단계 상승의 과정 중에 나타나는 어려움, 그것을 인내하지 못하고 군부의 쿠데타와 부정부패의 권력을 그들은 인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지금은(2004년)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참으로 중요한 시기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아이들이 살아갈 나라가 결정되는 시기이기 때문이고, 그 나라가 정보독점을 이용한 승자독식의 차가운 나라가 아니길 바라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오히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알고 있기 때문에 종합부동산세, 수도이전, 사학법 개정, 각종 정부정책의 공개, 복지제도의 확충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제도화하고 있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앞으로 나가는 선택을 실행해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 노무현 정부의 이런 행보를 누가 이끌었을까? 그것은 우리나라의 유권자들이다. 우리는 1997년 겨울,  2002년 겨울에 앞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2007년 겨울,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2010년..


2007년 겨울, 우리는 뒤로 되돌아가기를 선택했다.

2010년 겨울,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정부의 불법정치사찰, 경제위기, 사회불안, 자살증가, 복지축소, 안보불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