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apeum의/생각

역사이야기 - 영국이 인도를 포기한 이유..

serapeum 2010. 12. 5. 01:02

 

 우리는 세계사 시간에(역사 수업을 들어봤

다면..) 영국이 인도를 포기한 가장 큰 이유

는 간디를 중심으로한 인도인들의  거센 비

폭력 독립운동 때문이라고 들어왔다.

 

1857년 5월 10일,  세포이들의 반란으로  표

면화된 인도의 폭력적 독립운동과 그 약 육

십년 후, 간디를 중심으로한 비폭력적 독립

운동의 적절한 압박으로 영국은  인도를 포

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강조되는 것은 폭력적인 독립

운동보다는 비폭력적인 저항운동이 인도 독

립에 더 공헌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의 공식적 신화가 되어 이 후 여러  저항

운동의 모범이자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저명한 역사가들의 글들을 보면, "아니다"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폭력, 비폭력

과는 상관없이, 독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이유는 따로 있었다.  2차세계대전을 거

치면서, 영국 입장에서 인도를 비롯한 여러 식민지의 직접 지배로 얻는 이익과 직접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본국에서 투입되는 비용의 손익계산이 부의 값으로 역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영국의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확고히 했던 시기에는 전대륙에 걸쳐

있는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직접 지배손익은 항상 흑자를 유지 했었다. 그러나 기축

통화의 지위를 잃은 후에는 그 광범위한 직접 식민지 지배는 더 이상 이익을 남겨주

지 못했다.

 

오히려 수십년, 수백년 동안 식민지배를 하면서 키워온 정치, 경제, 군경등  사회 전

반의 현지인 엘리트들을 간접지원하며 경제적 이익만을 취하는 것이 유리해진 것이

다. 2차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세계최대 식민지 운영국가 였던 영국은 직접 식민지지

배의 메리트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은 말 그대로 불공정한 지배에 대한 저항일 뿐이였다. (간디

는 가장 후진적인 카스트 제도에 대한 저항은 하지 않았다.)  단지, 영국 지배자들에

게 공정한 지배를 해달라는 정도의 저항이 였던 것이다. 당시 인도 카스트의 상위계

급에 속해 있던 자들과 영국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영국의 인도 포기 선언에 오

히려 당황 한 부류도 많았다고 한다.

 

초대 수상 네루는 인도인의 언어를 사용할 줄 몰랐다. 대부분의 피지배국이 독립 후

에도 이전 지배국과 상당한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에 간

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이 몇 십년전에 똑 같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별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세포이 반란이 영국을  더 힘들게 했었을

테니까 말이다.... !!

 

어째 몇몇 부분은 우리 역사와 겹치기도 하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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