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apeum의/여행

유럽여행 첫번째 -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 (auschwitz)

serapeum 2010. 3. 2. 00:30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때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과 집시, 동성연애자, 전쟁포로들을 집단학살했다는 수용소로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위치는 폴란드의 구수도인 크라코우와 인접한 곳으로 유럽 전체적으로 보면 중부유럽의 교통요충지들 중에 하나이고 석탄과 광물이 많이 매장된 공업지역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수용소 주변으로 독일의 대기업 공장들이 들어서서 수용소의 인력들을 공장에서 사용했습니다. 초기 수용소의 주목적은 학살이 아닌 생산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우슈비츠라고하면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마지막쯤에 나오는 검은 연기가 나오는 굴뚝이 있는 거대한 수용소를 생각하시는데 그 곳은 아우슈비츠가 아닌 비르케나우 수용소입니다.

 

아래의 사진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인데요.. 이곳은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독일 뮌헨 근교이 다카우 수용소보다는 크지만 그 규모에 있어서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라고 불리는 비르케나우 수용소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습니다..

 

<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입구 -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 >

 

하지만, 독일의 수용소에 관한 참상에 대한 기록이 가장 체계적으로 보존되고 전시되어 있는 곳이 이 곳 아우슈비츠 수용소이기 때문에 광기의 역사를 확인해 보고 싶은 분들은 반드시 한번은 방문을 해 볼 필요가 있는 장소입니다.

 

< 처형의 벽 - 수용소 초기에 수용자들을 총살한 장소 >

 

제가 이곳을 방문했던 때가 벌써 13년이 지났네요... 저땐 정말 어렸었는데... ^^ ; 물론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그 곳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겁니다. 심지어는 작년말에 입구의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 철제간판이 도난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 ; 그리고 현재 무너져내리는 수용소 건물의 보수문제가 큰 이슈라고 합니다.

 

< 수용소 이중철망 - 전기 철망 >

 

아래의 사진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3Km 정도 떨어진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인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입구입니다. 이 수용소는 초기 집시와 폴란드 정치범,전쟁포로들을 주로 수용하던 아우슈비츠 지역수용소에 나치독일이 점령한 유럽지역의 유대인들이 본격적으로 수용되면서 확장된 곳으로 면적 규모만보면 54만평에 이릅니다. 

 

실제로 입구와 연결된 철길을 따라 들어가면, 왠지모를 처연함과 음산함을 느낄 수 있는데요. 막상 입구에 들어서서 수용소의 규모를 눈으로 확인하면 그 거대함에 말문이 막힙니다.

 

<비르케나우 - 죽음의 문 (영화 " 쉰들러리스트 " 때문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수용소 내부의 건물은 총 300여개동으로 구성이 되는데 현재는 많은 수가 철거되고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최고로 많이 수용되었을때는 20만명까지 이곳에 수용되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 수용인원들이 모두 유대인이였던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의 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각지의 부랑인, 소련의 전쟁포로, 집시, 독일정치범 등등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 소각로로 가는길 - 철길 옆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보인다. >

 

철길로 새로운 수용자들을 실은 기차가 들어와 이곳에 멈추면 바로 노동가능자와 불가능자로 분류되어 노동가능자는 샤워실로 불가능자는 가스실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앞에 보이는 입구는 노동능력이 없거나 떨어지는 노약자, 아이, 여성들이 가스실로 이동했던 길입니다.

  

< 파괴된 소각로 - 소련군에 점령되기 직전 파괴된 소각로 흔적 >

 

이와 같은 거대한 소각로가 4개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요. 모두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학살이 최고조에 다달았을 때, 하루에 2만명 이상을 처리했다고 합니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이 곳에서 가까운 풀밭에는 사진 한장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 그냥 들판에 사체들을 쌓아놓고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설명에는 처형된 수용자의 숫자가 소각시설의 처리능력을 초과했기 때문에 소각로 밖에서 처리하는 장면이라고 써있었습니다. 

 

<수용소 막사 내부 - 수용수들중 지위가 높은 수용수가 사용했던 상급 막사>




*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는 것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중 유대인들 600만명이 이 곳을 비롯한 유럽 전역의 수용소에서 학살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발표된 것은 이러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뒤집고 있습니다.

* 실제 희생된 인원은 7만명 정도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전염병과 굶주림에 따른 아사가 그 원인이였다겁니다. 그런 규모와 시설의 가스실이나 소각시설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단시일에 학살하고 처리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일부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 모든 역사는 승자의 기록에 근거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 다카우 수용소 정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