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나라 - 죽 쒀서 개줄 수 밖에 없는 이유
우리가 변절이라 부르는 과거 재야나 민주화 세력의 극우수구로의 투신은
그 실체가 변절이라 하기에는 심한 어패가 있다. 그들의 행동은 변절이 아
니다. 단지 그들의 자리를 찾아간 것 뿐이다. 이것이 언듯 이해되지 않을
경우 전체를 계급으로 구분해보면 된다.
이재오, 김문수 등 현재 한나라당에서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차지한 인물
들의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 있는가 이해가 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숫하게 볼 수 있는
씁쓸한 단편일 뿐이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 논설위원 류근일의 경우가
집권세력의 오해 때문에 심하게 당한 경우가 된다. 류근일 개인적으로는 참
억울한 젊은 시절이였을 것이다...
이해가 쉽게 예를 들자면 이렇다.
조선시대나 다른 신분계급이 분명한 시대를 연상해보면 된다.
젊은 양반 유생 중에 평민이나 노비에 그나마 호의적인 인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어떤 현실적인 제약으로 출세를 못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래서 현실의 불만을 토로하며 한양으로 와서 “세상 참으로 더럽소!”하며
상소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조금 바뀌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자신을 무시하던 세력들이 자신을 불러준 것이다.
그러자 그 양반 유생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 때서야 자신의 출세를 가로 막던 현실적 제약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아차린다. 바로 평소에 평민과 노비를 가까이 했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그 깨달음을 큰 배움으로 여기며 자신의 본분에 매진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기존의 양반들보다 더한 신분차별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더 분명히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층민에 대한 일말의 동정도 보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이 보이면 당연히 그 어렵게 오른 자리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더욱 열심히 자신이 상층부의 이익에 잘 협조함을 보이는 극우수구의 일원임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행동을 보인다.
그것이 자신의 과거를 지워버리는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 원래 자리를 찾아갈 뿐이다.
‘ B급 좌파 ’로 유명한 김규항씨의 말처럼
" 혁명이 항상 죽 쒀서 개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 정운찬 같은 인물들은 불러주면 가는 양반들이니까 여기서도 제외... *